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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파이브' 리뷰: 장기 이식, 초능력 그리고 인간의 오컬트적 오랜 믿음

돈생휴미 2025. 6. 7. 06:33

영화 '하이파이브': 장기 이식, 초능력 그리고 인간의 오랜 믿음

강형철 감독의 신작 '하이파이브'는 의문의 장기 기증자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얻은 다섯 명의 인물들이 펼치는 유쾌한 코믹 액션 판타지 영화입니다. 단순히 히어로물의 재미를 넘어, 인간의 오랜 믿음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딱 제 취향의 영화를 봤어요. 개봉하자마자 '미션임파서블'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라니. 예고편만 보고 너무 재밌을 거 같아 바로 보러 갔습니다.

'하이파이브'의 기본 정보와 매력

'하이파이브'는 2025년 5월 30일 개봉한 한국 영화로, '과속스캔들', '써니' 등으로 흥행을 이끌었던 강형철 감독의 7년 만의 복귀작입니다.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등 개성 강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액션, 코미디, 판타지, SF, 오컬트 등 다양한 장르가 과하지 않게 버무려진 비빔밥처럼 맛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의문의 장기 기증자로부터 각각 심장, 폐, 신장, 간, 각막을 이식받은 다섯 명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강형철 감독 특유의 유머와 리듬감 있는 연출은 장기 이식이라는 다소 진지한 소재에 판타지적 요소를 기발하게 결합하며 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개성 넘치는 초능력자들의 활약과 케미스트리

영화의 핵심은 장기 이식으로 특별한 능력을 얻은 다섯 인물들의 활약과 그들 사이의 유쾌한 케미스트리입니다.

완서(이재인)는 심장 이식 후 괴력을 얻어 팀의 메인 공격수로 활약합니다.
지성(안재홍)은 폐 이식 후 강력한 입김으로 적을 날려버리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선녀(라미란)는 신장 이식 후 다른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자신에게 옮기거나 전달하는 핵심적인 지원 역할을 합니다.
약선(김희원)은 간 이식 후 강력한 치유 능력으로 팀원들을 회복시킵니다.
기동(유아인)은 각막 이식 후 해킹 능력을 얻어 정보전과 시스템 교란을 담당합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능력만큼이나 개성 강한 성격들을 지니고 있어 티키타카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점차 팀워크를 이뤄나가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주성치 영화'를 연상시키는 유쾌함

일부 관객들은 '하이파이브'를 주성치 영화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는 영화가 지닌 코믹한 상황 설정, 과장된 액션, 그리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평범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유쾌함 때문입니다. 

 

주성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병맛 코드와 슬랩스틱 코미디, 그리고 때로는 B급 감성까지 느껴지는 유머는 '하이파이브'에서도 강형철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주성치 영화 특유의 유쾌하고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공유하며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빌런 '영춘'과 그에 대한 아쉬움

영화의 빌런인 영춘 역은 박진영 배우가 젊은 시절을, 신구 배우가 노년의 모습을, 2인 1역으로 연기하였는데요. 췌장을 이식받고 특별한 능력을 얻은 영춘은 평생 꿈꿔온 절대자가 되기 위해 다른 이식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개인적으로 사이비 교주의 광기 어린 카리스마와 상대를 압도하는 초능력의 빌런을 기대했지만 존재감이나 깊이 있는 악역 연기가 다소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코미디 요소가 강한 영화의 특성상 빌런의 연기 톤 역시 마냥 진지하기보다는 코믹한 캐릭터로 설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구요.


장기 이식과 '힘의 전이'에 대한 인류의 오랜 오컬트적 상상력

'하이파이브'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장기 이식과 '힘의 전이'에 대한 인류의 오랜 오컬트적 상상력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화 속 판타지를 넘어, 우리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믿음과도 연결됩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과학이 발달하기 전, 아픈 장기를 고치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장기를 섭취하거나 특정 장기가 특별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 미신적인 관습이 있었습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으로 고친다"는 동종요법적 사고가 바탕에 깔린 것이죠. 

 

'하이파이브'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러한 고대 믿음, 즉 특정 장기를 통해 힘이 전이되거나 시대와 대륙을 넘어 존재해 온 초능력자의 역사를 암시하며 영화의 판타지적 설정을 강화합니다.

 

강형철 감독은 인터뷰에서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고대에 어떤 힘이 주어진 사람이 시대와 대륙을 지나치며 선인으로 기억되거나 악마로 기억되기도 하는 과정을 오프닝 시퀀스에 담았다. 메두사, 드라큘라처럼 한 존재 안에 그 힘이 다 있거나 6개로 쪼개졌을 때도 있었음을 암시했다."


이러한 맥락은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실제로 장기를 섭취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에 담긴 "아픈 부위와 동일한 장기를 섭취하면 병이 낫는다"는 미신적인 믿음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건강한 삶에 대한 간절함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한국 드라마 '내 생애 봄날'에서는 심장 이식 후 기증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느끼는 '세포 기억설'을 드라마틱한 장치로 활용하며, 장기가 단순히 생명 유지 기관을 넘어선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세 작품 모두 과학적인 현실을 넘어선 '장기의 신비로운 힘' 또는 '생명력의 전이'라는 아이디어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극의 중요한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이파이브'의 특별함

'하이파이브'는 강형철 감독 특유의 유쾌한 코미디와 예측 불가능한 액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장기와 생명, 그리고 초월적인 힘에 대한 상상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유쾌함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되짚어보게 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