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생기면 책을 사겠다”는 말은 요즘 시대엔 그다지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책이 아무리 비싸봐야 얼마나 하나. 2만 원 남짓.
배달 한 끼, 카페 두 번 안 가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처음 내 블로그 타이틀은 '돈이 생기면 책을 산다'였다.
하지만 곧 '돈이 생기면 보이는 것들'로 바꿨다.
왠지 책을 산다는 말이 정상적인 한국 사람의 소비 취향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돈이 생기면 주식을 산다, 혹은 부동산을 산다는 말이 더 있어 보이고, 더 계산적이며,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 정말 돈이 생기면 책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내 모든 관심을 그리스어에 돌렸습니다.
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리스 작가들의 책을 사는 것입니다.
그 후에 나는 옷을 사겠습니다."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1466~1536)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땐 솔직히 감탄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말이 15세기~16세기 유럽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얼마나 파격적인 선언이었는지를 아는 순간부터다.
그 시절 책은 지금처럼 쉽게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지만, 여전히 책 한 권 값은 장인의 한 달치 월급과 맞먹었고,
가죽 제본에 수공예 삽화까지 넣은 경우, 더 비싼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은 책은 이제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클릭 한 번이면 당일배송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소비재가 되었다.
오히려 이젠 너무 쉽게 살 수 있어서, 책을 사는 일이 감동이 되지 않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돈이 생기면 책을 사겠다"는 말은,
책을 산다는 행동 자체보다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태도에 가깝다.
요즘은 주식을 사는 사람도 많고, 부동산을 노리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투자를 고민하고, 부동산 경매를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여전히 책을 산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번다.
주식과 부동산은 삶을 지탱하기 위한 자산이라면,
책은 삶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나만의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도구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돈이 생기면 책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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