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력 11

‘마침내’라는 슬픈 운명, 공무도하가와 헤어질 결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공무도하가를 외울 수 있다. 이 시를 모티브로 한 영화도 있고 노래도 있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고조선 시대의 시가로, '공후인'이라 하기도 한다. 이 시의 배경 설화는 이렇다.곽리자고라 하는 뱃사공이 새벽에 일어나 배를 손질하고 있을 때, 머리가 하얀 미친 남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물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그의 아내가 소리치며 막았지만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연주하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 후 자신도 물에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가 자신의 아내 여옥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자 여옥이 공후를 타며 그 노래를 불러 세상에 전해졌다. 이 시의 배경 설화이다. ​..

독서력 2025.06.18

예스24에서 알라딘으로, 랜섬웨어 해킹 이후 신뢰를 묻다

예스24 - 그 감동의 시작예스24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당시의 감동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일이 아직 낯설던 시절, 시간을 들여 시내 대형서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 혁명이었습니다. 클릭 한 번이면 책이 집으로 오고, 적립금을 모아 책을 한 권 더 사게 되고, 리뷰를 쓰면 내가 읽은 책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감각도 새로웠죠. 그때 예스24는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책 읽는 삶에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 플랫폼이었습니다. 그렇게 10여년 동안 예스24의 충성고객으로 정말 많은 책을 구입했습니만 언제부터일까요. 예스24가 몸집을 불리기 시작하면서 배송 시스템이 엉망이 된 적이 있습니다. 고객 응대도 관성적이고. 몇번 그런 일을 겪으면서 실망을 하게 되어 알라딘으로 갈아탔는데요...

독서력 2025.06.13

첫사랑의 입술을 닮았다는 그 음식, 직접 구워봤다, 만화 심야식당 구운 명란젓 레시피

어릴 적 나는 명란젓을 '명랑젓'으로 알아들었다. 아마도 그때는 명랑 만화라는 것에 빠져 있어서 그렇게 들렸나 보다. 맛은 전혀 명랑하지 않은데 왜 명랑젓일까 궁금했다. 날 것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입맛에 명란젓의 날비린내는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맛이었다. 포슬포슬 굴러다니는 알알의 식감은 좋았지만, 끝내 익숙해지진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명란젓을 피하고 싶은 반찬으로 기억했다. 만화 심야식당의 구운 명란젓내가 명란젓의 맛을 재발견한 사건은 '심야식당' 만화를 접하고 나서의 일이다. '심야식당'은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한 식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작품으로, 손님이 원하면 가능한 모든 음식을 만들어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손님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이야기가..

독서력 2025.06.09

사랑 이후의 사랑, 노벨문학상 수상자 데렉 월컷의 시 감상

도플갱어와 화해하는 법열 살 무렵의 막내딸이, 어느 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질문이 많은 딸아이에게, 저는 주저 없이 대답했죠. “글쎄, 귀신?”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도플갱어.” 도플갱어. 나를 똑같이 복제한 듯한 존재. 겉모습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 습관과 말투, 눈빛까지 똑같다면… 맞아요. 그건 귀신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릅니다. 나와 싸우는 나 - 판타지와 전설 속의 그림자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주인공 일행은 자신들과 똑같은 도플갱어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입니다. 똑같기에 더욱 치열했고, 더욱 처절했습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톱을 함부로 버린 사람의 손톱을 먹은 쥐가 사람으로 변해, 그..

독서력 2025.06.06

심장처럼 떨어진 시, 류시화의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이라니, 너무 상투적인 은유 아닌가.” 류시화 시인의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을 구매하며 들었던 첫 생각이다. 그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꽃의 액기스를 뽑아내 너무 우려내어 향기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꽃'이라는 언어에 기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말라버린 꽃처럼, 시는 더 이상 향기를 품지 못할 거라 여겼다. 나는 빛이 바랜 폐허 속에서 길을 잃은 채로 이 시집을 펼쳤다. 상투적인 것을 꺾는 힘그런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시인은 담박에 나의 우려를 무너뜨렸다.문제는 꽃이 아니었다. 꽃을 노래하는 방식이었다. 류시화는 상투성을 상쇄하는 힘을 가졌다. 그대의 삶이 시를 잃었을 때 그대가 기억하는 내 시 한 편이 봄을 담고 그대에게 다가가기를– 시집의 서..

독서력 2025.06.04

'정의란 무엇인가'로 보는 마이클 샌델의 정치 철학

정치란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선택입니다 마이클 샌델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철학이 정치에 필요한 이유"정치란 무엇인가?"이 단순한 질문에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단순한 ‘정치 교양서’가 아닙니다.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해 정치의 목적은 시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의(justice)는 단순한 절차나 제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에 관한 윤리적 질문이라는 것이죠.그리고 이 주장은,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오래된 철학 전통을 다시 꺼내듭니다. 윤리 없는 정치, 그게 가능할까요?오늘날 우리는 정치를 주로 ‘제도’, ‘권력’, ‘정당’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하지만 고대 철학자들은 정치를 ‘좋..

독서력 2025.06.02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 자제력의 역설, 기억의 덫에 빠진 인간

강박사고, 억제의 역설 그리고 인간의 딜레마흰곰을 잊어야 하는데, 텅 빈 방 안은 흰곰으로 꽉 차 있다. 홀로 누운 천장 위에서 춤을 추고, 열 맞춰 널어놓은 빨래다이에 축 늘어져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생각. 이를 다니엘 웨그너는 “흰곰 효과(White Bear Effect)”라 불렀다."흰곰을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했을 때, 우리는 곧장 흰곰을 떠올리고 만다. 억제는 역설을 낳는다. 억누를수록 더 폭발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며, 기억이며, 감정이다. 바우마이스터는 말한다. 의지력은 에너지 자원이며, 고갈될 수 있는 정신의 체력이라고. 누군가를 '잊으려는 의지'는 단순한 마음먹기가 아니다. 정신적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며, 자제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자아를 탈진시켜 더 깊은..

독서력 2025.06.01

정약용도 했던 독서법, 당신은 해봤는가?

책을 읽는다고 모두 배우는 것은 아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 정약용은 책을 ‘읽고, 정리하고, 옮겨적는’ 삼박자 독서법으로 스스로를 완성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읽는 법이 아니라 익히는 법이다. 다산이 남긴 독서의 정수, 지금부터 살펴보자.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이란? 정약용은 독서를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눴다. 정독 주의 깊게,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관련 자료를 함께 참고하여 비교하며 읽는 것이다. 질서(記書) 읽는 도중 떠오른 생각은 그때그때 메모로 남긴다. 질문이든 통찰이든, 잊히기 전에 붙잡아 기록하는 것이다. 초서(抄書) 중요한 구절은 그대로 베껴 쓴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독서력 2025.05.24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몬스터랑 맞짱 뜨는 거임, '몬스터 콜스'와 '가윈 경과 녹색 기사'를 읽고

와 - 내면의 괴물과 마주하는 두 개의 성장 서사 소설 (A Monster Calls)는 사춘기 소년의 내면 풍경을 다룬 감정의 서사입니다. 다크 판타지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그 속엔 상실과 두려움, 분노와 용서가 교차하는 복합적 감정이 응축돼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감정을 흔든 이 작품은, 단순히 괴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진실과 마주하기 위한 용기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코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앞두고, 학교에선 따돌림을 겪으며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그가 밤마다 불러내는 '몬스터'는 현실의 괴물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과 직면하지 못한 진실이 형상화된 존재입니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들은 교훈적 우화도, 명확한 권선징악도 ..

독서력 2025.05.22

지금 모르면 손해! 당신의 성공을 가르는 ‘마태복음 효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마태복음 25:29 세상은 때때로 불공평해 보입니다. 가진 자는 더 갖고, 없는 자는 더욱 소외됩니다. 그런 냉정한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바로 마태복음 25장 29절입니다. 이 구절은 종교의 교훈을 넘어서, 오늘날의 경제, 교육, 심리학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를 과학계의 현실로 설명했습니다. 동일한 연구 성과를 내도 유명한 과학자는 더 많은 연구비와 주목을 받는 반면, 무명 연구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는 이 현상을 마태복음 효과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미 인지도를 가진 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독서력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