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콜스>와 <가윈 경과 녹색 기사>
- 내면의 괴물과 마주하는 두 개의 성장 서사

소설 <몬스터 콜스>(A Monster Calls)는 사춘기 소년의 내면 풍경을 다룬 감정의 서사입니다. 다크 판타지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그 속엔 상실과 두려움, 분노와 용서가 교차하는 복합적 감정이 응축돼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감정을 흔든 이 작품은, 단순히 괴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진실과 마주하기 위한 용기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코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앞두고, 학교에선 따돌림을 겪으며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그가 밤마다 불러내는 '몬스터'는 현실의 괴물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과 직면하지 못한 진실이 형상화된 존재입니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들은 교훈적 우화도, 명확한 권선징악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호함과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코너는 이야기들 속에서 스스로 외면하고 있던 감정의 진실과 대면하게 됩니다.
이처럼 <몬스터 콜스>는 판타지의 문법을 빌려 한 소년의 통과의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의외로 중세의 고전 서사시 <가윈 경과 녹색 기사>(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입니다.

중세 기사와 사춘기 소년, 서로 다른 시대의 같은 여정

<가윈 경과 녹색 기사>는 아서 왕 전설에 등장하는 젊은 기사 가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신비한 녹색 기사가 궁정에 나타나 목숨을 건 내기를 제안하고, 가윈은 기사도로서 그 도전에 응합니다. 이후 그는 길고 고된 여정 속에서 유혹과 공포, 도덕적 딜레마에 맞닥뜨리며 점차 자신 안의 오만과 불안, 인간적 나약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몬스터 콜스>에서 코너가 겪는 시련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여정은 칼을 들고 떠나는 모험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감정과의 치열한 사투입니다. 코너는 죄책감과 분노,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진정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죠.
두 작품 모두 이야기 속의 '괴물'은 단순한 적대자가 아닙니다. 가윈에게 있어 녹색 기사는 인간적 도덕을 시험하는 존재이며, 코너에게 있어 몬스터는 감정을 통합하고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괴물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더불어, 두 작품 모두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도덕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인간적인 흔들림 속에서 다시 구성되어야 할 가치로 다뤄집니다. 이 모호함 속에서 주인공들은 정의롭기보다 솔직해지려는 용기를 배웁니다.
괴물과 성장, 그리고 사나운 이야기의 필요
<몬스터 콜스>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바로 소년들의 공격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입니다.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흐름 속에서 사내아이들이 지닌 본능적 에너지와 공격성은 억눌려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니체를 인용하며, 도덕성이 때때로 비겁함의 가면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억제된 공격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어 표출될 수 있기에, 제대로 다뤄야 할 '힘'입니다.
<몬스터 콜스>는 이 공격성을 ‘사나운 이야기’ 속에서 통합합니다. 코너는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을 이야기하고, 드러내고, 부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는 <가윈 경과 녹색 기사>에서 가윈이 인간적 약함을 인정하며 도달한 겸허함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론 - 괴물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몬스터 콜스>와 <가윈 경과 녹색 기사>는 서로 다른 시대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내면의 괴물과 마주함으로써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를 공유합니다. 그 괴물은 우리 안에 있는 분노이자 공포이며, 나약함이고 동시에 진실입니다.
이 두 작품은 말합니다.
"진짜 성장은, 진실과 마주할 용기에서 비롯된다."
괴물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회피해온 진실을 마침내 마주할 준비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다시 진실한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분노를 품은 아이의 상상과 귀환
(세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군요. 영화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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