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고 모두 배우는 것은 아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 정약용은 책을 ‘읽고, 정리하고, 옮겨적는’ 삼박자 독서법으로 스스로를 완성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읽는 법이 아니라 익히는 법이다.
다산이 남긴 독서의 정수, 지금부터 살펴보자.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이란?
정약용은 독서를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눴다.
정독
주의 깊게,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관련 자료를 함께 참고하여 비교하며 읽는 것이다.
질서(記書)
읽는 도중 떠오른 생각은 그때그때 메모로 남긴다. 질문이든 통찰이든, 잊히기 전에 붙잡아 기록하는 것이다.
초서(抄書)
중요한 구절은 그대로 베껴 쓴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 <다산의 독서 전략>, 권영식
초서 – 가장 어렵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
초서(베껴쓰기)는 삼박자 중 가장 실행하기 어렵지만, 효과는 가장 크다. 단지 필사를 위한 필사가 아니라, 핵심 내용을 나의 언어로 통과시키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도 이를 실천했다.
안도현 시인은 대학 시절 백석 시의 전편을 노트에 베껴썼다.
신경숙 작가는 자전적 소설 <외딴방>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수많은 소설을 베껴썼다고 했다.
명로진 작가는 '교향곡을 작곡하려면 먼저 대가의 악보를 손으로 따라 그려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을 저술했다.
글쓰기든, 공부든, 가장 빠른 길은 좋은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실전! 정약용식 독서법 – 남정욱 교수 방식
<차라리 죽지 그래>에서 남정욱 교수는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했다. 단순히 방법론을 넘어 루틴화가 핵심이다.
1~3개월차: 연결 독서 + 초서
일주일에 역사책 한 권 읽기
두 번째 책은 첫 책과 관련된 주제 선택
이 과정을 3개월간 반복하면 약 15권의 책을 읽게 되고,
초서 공책은 두 권가량 쌓인다
이 시점에서 그 분야에 대한 A4 한 장 분량 글쓰기는 가볍게 가능해진다.
4~5개월차: 『모던 타임즈』 초서 훈련
폴 존슨의 『모던 타임즈』를 한 달간 정독 + 베껴쓰기
이후 한 달 동안 두 번 반복해서 다시 읽는다
6개월차 이후: 독서의 확장
『모던 타임즈』에서 파생된 책들을 자유롭게 탐색
이쯤 되면 독서는 습관이 되고, 초서는 무기가 된다
다산에게 배우는 진짜 독서법
우리는 존 스튜어트 밀,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서양 인물들의 독서법엔 관심을 쏟으면서, 정작 정약용이나 김득신처럼 놀라운 독서력을 가진 조선 지식인들의 방식은 홀대해 왔다.
그들의 방식이 지금 우리의 시대와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핵심을 선별하고, 기록하며, 구조화하는 고전적 방식이 더 유효하다.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은 단순히 옛사람의 독서법이 아니다.
깊이 읽고
연결해서 사고하고
내 언어로 옮겨 적는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공부법이자, 생각 훈련법이다.
책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책이 내 안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 문장이라도 베껴쓰기.
오늘의 초서 한 줄이 당신의 사고를 바꾸고 결국 삶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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