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에드워드 코벳, 로사 에벌리
- 출판
- 베이직북스
- 출판일
- 2011.11.30
<비트겐슈타인처럼 사고하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하라>를 읽고
이 책은 원래 <추론의 기본>이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이후 제목을 바꿔 개정판으로 나왔다. <비트겐슈타인처럼 사고하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하라>, 책 제목만큼은 정말 세련됐다.
제목 하나 바꿨을 뿐인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느낌이 다르다. 내용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느냐 역시 독자에게 닿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만, 제목에서 기대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나 울프의 문체와는 사실상 별 관련이 없다는 게 약간의 배신감 아닌 배신감이다.

첫 장부터 난관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수사학의 전문 용어들.
에로스, 로고스, 파토스, 크리시스, 착상, 귀납법, 연역법, 삼단논법…
어떤 책은 독자를 끌어들이지만, 이 책은 나를 밀어낸다. 눈은 활자를 따라가지만, 머리는 이미 안드로메다에 도착해 있다. 거기에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연습문제까지 등장하니, 무슨 철학 입문서라기보다는 대학 교재 같다.
미궁 속에서 만난 한 줄의 문장
그러다 94쪽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설득이 아니라 공감을 통해 사람의 추론을 이해해야 한다는 케네스 버크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전에 - 또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기 전에 -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에 공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문장을 마주친 순간, 복잡하게 얽힌 개념의 미로 속에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추론은 논리의 완결성이 아니라 공감의 방향성이다.
완벽한 논리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감 가능한 맥락과 감정이 추론의 힘을 발휘한다. 그제야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와 추론의 방식에 대하여
책에서 강조하는 생략 삼단논법은 특히 흥미롭다.
‘결과 → 왜냐하면 → 이유’로 이어지는 이 구조는 영어권 화법의 전형이지만, 한국어는 보통 ‘이유 → 그래서 → 결과’로 말한다. 구조적으로는 한국어가 더 귀납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런 귀납적 추론에 약하다.
왜일까?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그 언어가 요구하는 사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셈이다. 번역과 사고, 사고와 삶 사이에 놓인 이 미묘한 간극. .
결국 중요한 건 이것이다
이 책은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덮고 나면 왠지 뿌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도, 버지니아 울프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배움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이 알려주는 건 단순한 논리의 기술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설명하며 살아간다.
회의에서, 일상 대화에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말과 생각 사이의 연결 고리가 약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추론은 공감의 기술이며, 표현은 사유의 결과다.
이 책이 말하듯, 설득보다 중요한 건
상대가 나의 맥락을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스스로 생각의 구조를 의심해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모두가 비트겐슈타인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그처럼 생각해보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해보려는 시도는 해볼 수 있다.
그게 말과 글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가장 지적인 훈련이며,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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