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력

첫사랑의 입술을 닮았다는 그 음식, 직접 구워봤다, 만화 심야식당 구운 명란젓 레시피

돈생휴미 2025. 6. 9. 08:39

어릴 적 나는 명란젓을 '명랑젓'으로 알아들었다. 아마도 그때는 명랑 만화라는 것에 빠져 있어서 그렇게 들렸나 보다.

맛은 전혀 명랑하지 않은데 왜 명랑젓일까 궁금했다. 날 것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입맛에 명란젓의 날비린내는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맛이었다.

포슬포슬 굴러다니는 알알의 식감은 좋았지만, 끝내 익숙해지진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명란젓을 피하고 싶은 반찬으로 기억했다.

 

만화 심야식당의 구운 명란젓

내가 명란젓의 맛을 재발견한 사건은 '심야식당' 만화를 접하고 나서의 일이다.


'심야식당'은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한 식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작품으로, 손님이 원하면 가능한 모든 음식을 만들어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손님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손님들이 주문하는 음식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흔한 비엔나 소시지라든지, 만든 후 하루 지나 따뜻한 밥에 얹은 차가운 카레라든지(- 어제의 카레라는 메뉴다), 달걀말이 같은 서민적인 음식들이 대부분이며 따라서 이야기 또한 서민적이다.

 

구운 명란젓의 재발견 - 고소하고 따뜻한 위로 

그 중에 구운 명란젓이 있다. 스트립쇼를 직업으로 하는 마릴린이란 여자가 주문한 음식이 '미디엄'으로 구운 명란젓이었다. 그녀가 명란젓을 좋아하는 이유는 첫사랑의 입술이 명란젓을 닮아서 라고 했다.

'심야식당'의 이 장면에서 나는 평소 즐겨먹지 않는 명란젓에 흥미가 생겼다. 과연 구운 명란젓은 입술의 색을 닮았다. 구운 명란젓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면 고소한 감칠맛의 풍미가 입안 가득 점령해 들어온다. 

 

익숙한 듯 낯선 이 풍미는, 비릿했던 기억을 따뜻한 온기로 감싸 안으며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포슬포슬 터지는 알갱이의 즐거움과, 입술을 닮은 묘한 생동감까지. 그건 어쩌면 명랑함을 다시 배우는 맛이었다.


나만의 레시피: 오차즈케 위의 명란젓
- 가장 단순한 고급스러움

나는 이 구운 명란젓을

오차즈케에 올려 곧잘 먹는다.
따끈한 녹차물에 밥을 말고, 

살짝 구운 명란젓을 한 덩이 올린다.
김가루나 쪽파를 살짝 더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한 끼가 완성된다.

속은 편안하고, 맛은 깊다.
명랑하면서, 그 자체로 기분 좋은 한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