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력

‘마침내’라는 슬픈 운명, 공무도하가와 헤어질 결심

돈생휴미 2025. 6. 18. 18:07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공무도하가를 외울 수 있다. 이 시를 모티브로 한 영화도 있고 노래도 있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고조선 시대의 시가로, '공후인'이라 하기도 한다.

 

이 시의 배경 설화는 이렇다.


곽리자고라 하는 뱃사공이 새벽에 일어나 배를 손질하고 있을 때, 머리가 하얀 미친 남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물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그의 아내가 소리치며 막았지만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연주하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 후 자신도 물에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가 자신의 아내 여옥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자 여옥이 공후를 타며 그 노래를 불러 세상에 전해졌다. 이 시의 배경 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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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기묘함이란.. 너무도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끊임없는 물음표들. 

 

백수광부는 왜 물에 뛰어들었을까. 

그의 아내는 또 왜 남편의 뒤를 따랐을까. 

지켜보던 뱃사공은 왜 이들을 말리지 않았을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나무위키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소개한다.

백수광부는 고조선의 무부(巫夫), 즉 제사장으로 해석된다. 신내림을 받아 황홀경에 이르렀고, 작두를 타듯 강물에 들어가 결국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들고 있던 동이는 술동이이며, 디오니소스와 같은 주신(酒神)으로 본 해석도 있다. 그의 아내는 님프, 즉 음악의 여신적 존재로 보는 신화적 접근도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더 현실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공무도하가는 이른바 '아리랑 정서'의 원형이다. 고조선이 한무제에 의해 멸망한 후, 많은 남성들이 대규모 토목사업에 강제 동원되며 강을 건너야 했다. 떠나는 남편, 남겨진 아내. 그 이별의 보편성과 현실성이 이 노래의 기저 정서이다.


그리고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는 이 시의 문학적 구조에 주목한다.
그는 '공무도하(公無渡河)'와 '공경도하(公竟渡河)'의 긴장감을 해설하며, '무(無)'와 '경(竟)'이라는 두 음절의 충돌을 짚어낸다.

'무'는 하지 말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경'은 결국 일어났다는 냉혹한 사실이다.

신형철은 이 시가 간절한 '무'를 냉정한 '경'이 무너뜨리는 구조라고 말한다.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는 이 '경(竟)'이라는 단어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서래는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
그녀의 '마침내'는 이별이자 영원한 포옹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수광부의 헤어질 결심, 서래의 헤어질 결심, 그리고 그 모든 '마침내(竟)'들.


만약 누군가 연인과의 이별로 상처받았다면
공무도하가를 읽어보라.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보라.

죽음과 바꾼 이별 앞에서,
내 상처는 아주 작은 물결처럼 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