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응시

그림은 거들 뿐, 시와 그림이 만나는 조선의 봄 풍경, 김홍도의 세마도 읽기

돈생휴미 2025. 5. 18. 16:28

김홍도 <세마도>

 

돌담 너머, 작은 쪽문을 나서면 연못이 있다.
아마도 그곳은 주인만이 아는 작은 쉼터일 것이다.

 

 

문밖의 연못물에 발을 담근 말 한 마리.
등을 쓸어주는 주인의 손길이 고요하고 다정하다.

말은 온몸을 맡기고, 사람은 마음을 풀어놓는다.

 


버드나무 가지는 바람에 너울거리고,
그 아래로 봄빛이 번지듯 퍼진다.

 

 


이 한가로운 풍경을 두고 김홍도는
당나라 시인 한굉의 시구를 큼직하게 써 넣었다.

 

문밖 푸른 못물로 봄날의 말을 씻기고
누대 앞 붉은 촛불로 밤의 손님을 맞는다.


시가 등장하는 순간, 이 그림은 달라진다.
그림은 공간을 담지만, 시는 시간을 불러온다.


낮에는 정갈하게 말을 씻기고,
밤에는 초를 켜고 손님을 맞는다.
한 줄의 시로 하루가 완성된다.

 

봄날의 여유, 절제된 사치, 조용한 환대가
짧은 붓질 몇 번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마도>는 한 폭의 풍속화를 넘어,
시간을 누리는 감각을 이야기한다.

 


그림은 거들 뿐. 핵심은 시에 있다.
그리고 그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느림과 다정함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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