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담 너머, 작은 쪽문을 나서면 연못이 있다.
아마도 그곳은 주인만이 아는 작은 쉼터일 것이다.
문밖의 연못물에 발을 담근 말 한 마리.
등을 쓸어주는 주인의 손길이 고요하고 다정하다.
말은 온몸을 맡기고, 사람은 마음을 풀어놓는다.
버드나무 가지는 바람에 너울거리고,
그 아래로 봄빛이 번지듯 퍼진다.
이 한가로운 풍경을 두고 김홍도는
당나라 시인 한굉의 시구를 큼직하게 써 넣었다.
문밖 푸른 못물로 봄날의 말을 씻기고
누대 앞 붉은 촛불로 밤의 손님을 맞는다.
시가 등장하는 순간, 이 그림은 달라진다.
그림은 공간을 담지만, 시는 시간을 불러온다.
낮에는 정갈하게 말을 씻기고,
밤에는 초를 켜고 손님을 맞는다.
한 줄의 시로 하루가 완성된다.
봄날의 여유, 절제된 사치, 조용한 환대가
짧은 붓질 몇 번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마도>는 한 폭의 풍속화를 넘어,
시간을 누리는 감각을 이야기한다.
그림은 거들 뿐. 핵심은 시에 있다.
그리고 그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느림과 다정함의 언어다.
#김홍도 #세마도 #풍속화 #고전명화 #봄풍경 #시와그림 #한굉 #조선미술 #미술감상
'사소한 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그 뜻은? (1) | 2025.06.09 |
|---|---|
| 영화 '하이파이브' 리뷰: 장기 이식, 초능력 그리고 인간의 오컬트적 오랜 믿음 (5) | 2025.06.07 |
| 처치곤란 오이 활용법, 시원한 오이냉국 레시피 (2) | 2025.06.05 |
| 사랑과 꿈, 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에서 -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리뷰 (0) | 2025.05.25 |
| 불고기를 숙주 삼아 주인 행세하는 숙주 산더미 (0) | 2025.05.23 |